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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예수님처럼 친구가 되어 주라

| 입력:2017-03-15 09:18

혼밥, 혼행을 즐기는 싱글 라이프 세대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면서 사실 우리는 모두 외롭고, 두렵다. 수많은 사람들이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갈망을 해소하기 위해 매일같이 스스로 만든 작은 디지털 세상의 안전한 울타리 속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우정을 비롯해 거래하는 우정, 일차원 우정 등은 도리어 외로움을 키운다. 게다가 교회 공동체마저 고립과 외로움을 더욱 심화시키는 양상이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저자인 스캇 솔즈(現 내슈빌 그리스도장로교회 담임목사)는 5년간 뉴욕 리디머교회에서 대표목사 겸 설교목사로 팀 켈러와 함께 사역했다. 다양한 인간 군상과 문화가 모인 대도시 뉴욕에서 목회를 했기에 그는 누구보다 더 이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그리하여 이 책을 통해 이 시대 크리스천의 인간관계를 복음의 프리즘으로 해부했다.

 

함께하는 예수의 삶으로 초대하다!

 

이 책은 혼자만의 삶에 빠져들거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피상적이고 손쉬운 관계에 만족하는 현대인들을, 생명을 주고받는 복음적 관계 속으로 초대한다. 외로움, 소외감, 두려움, 수치심으로 얼룩진 현대인들의 내면을 진단하고, 기꺼이 우리 같은 죄인들의 친구라 불리기를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소개한다. 우리가 예수님과 또 사람들과 진정한 우정을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다양한 현실(가정 및 교회 안의 분쟁, 인종·세대·정치 진영·빈부 간의 갈등, 난민, 장애, 질병, 죽음 등)에 '예수 사랑'의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예수 사랑에 물들면, 사랑할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복음을 가진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보여 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이 가진 속성들을 내 안에서 발견하게 하고, 그런 나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친구가 되어 주신 예수 복음을 만나게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게 해 주신 일'이 곧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의 동기가 되도록 이끈다. 이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타인과 복음적 관계를 맺는 구체적인 방법들에 진정성과 힘을 보탠다. 이 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서 항상 하나님의 형상을 보셨던 예수님의 습관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될 것이다.

 

*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_스캇 솔즈(Scott Sauls)

 

미국 테네시 주 내슈빌 그리스도장로교회(Christ Presbyterian Church) 담임목사다. 이전에는 뉴욕 리디머장로교회에서 대표 목사 겸 설교 목사를 맡아 팀 켈러와 함께 사역했으며, 캔자스시티와 세인트루이스에서도 교회를 개척한 바 있다. 퍼먼대학교(Furman University)에서 경영학(B.A.)을, 커버넌트신학교(Covenant Seminary)에서 기독교와 현대문화(M.Div)를 전공했다. 교회 목회 외에도 각종 컨퍼런스와 리더십 수련회, 대학생 대상 집회에서 자주 강사로 선다. 다른 저서로 Jesus Outside the Lines(선 밖의 예수님)가 있으며, 아내 패티, 두 딸 애비, 엘리와 함께 내슈빌에 살고 있다.

 

블로그 www.scottsauls.com

 

트위터 twitter.com/scottsauls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cottsauls

 

페이스북 www.facebook.com/scott.sauls.7

 

그리스도장로교회 www.christpres.org

 

옮긴이 _정성묵

 

광운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2015년 문서선교협력위원회가 선정한 '올해의 역자상'을 수상했다. 《쉬운 예수는 없다》, 《나의 끝, 예수의 시작》, 《존 오트버그의 선택 훈련》, 《팬인가, 제자인가》, 《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악의 문제 바로 알기》(이상 두란노) 등 다수의 역서가 있다.

 

* 추천의 글

 

스캇 솔즈는 우정의 프리즘으로 그리스도인 삶 전체를 들여다본다. 이는 신학적으로 꼭 필요한 프로젝트다. 복음이 하나님을 우리의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 때, 우리가 우리의 연약한 모습만이 아니라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정체성까지 받아들일 때, 그때 우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 스캇 솔즈가 명쾌하게 보여 주듯이, 기독교는 우정의 종교다. 이 책은 우리 삶 전체를 복음과 일치시키라고 권면할 뿐 아니라 실제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 준다.

 

팀 켈러 _ 리디머장로교회 담임목사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양한 부류와 진정한 우정을 쌓아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더 분명히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스캇이 이 주제로 목소리를 내준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고맙다.

 

매트 챈들러 _빌리지교회 목사 및 액츠29네트워크 대표

 

오늘날 우리의 아주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외로움이다. 우정은 쌓기도 힘들지만 유지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고립과 피상적인 관계는 쉽지만 영혼을 죽인다. 존경하는 스캇 솔즈는 '깊은 우정'이라는 기독교의 비전을 제시한다. 이 책은 지혜롭고 성경적이며 실용적이다.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러셀 무어 _남침례교 윤리및종교자유위원회 회장

 

나날이 하나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외로운 사람들이 오히려 전에 없이 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우정 쌓기란 언제나 쉽지 않지만 언제나 중요하다. 이번에 솔즈가 우리 모두에게 더 많이 필요한 것을 낱낱이 파헤쳐 줘서 정말 고맙다.

 

존 아쿠프 _<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이 책에서 스캇 솔즈는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페이스북에서 이뤄지는 소위 '친구 맺기'와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의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가르쳐 준다. 세상에는 값싼 "좋아요"가 발에 채인다. 그러나 솔즈는 우리에게 '진짜 사랑'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리킨다. 꼭 필요한 책이 꼭 필요할 때 나왔다.

 

엘리자베스 하셀벡 _토크쇼 진행자

 

 저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관계에 관해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디지털 관계에 묶여 있지만 자신의 삶과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

 

* 차례

 

 추천의 글

 

 서문 _앤 보스캠프. 지나칠 것인가, 손잡을 것인가

 

 Part 1.사랑을 잃어버린 세상, 우정을 잃어버린 기독교

 

사랑할 이들을 외면한 채 복음을 부르짖다

 

1. 피상적인 교제, 외로움만 증폭되다

 

2. 거울 속에 보이는 사람이 병들어 있다

 

3. 사랑받은 대로 사랑하는 삶을 시작하라

 

Part 2. 사랑에 물들면 사랑할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의 친구는 누구인가

 

탕자와 바리새인

 

4. 상처를 준다는 건 상처가 많다는 뜻이다

 

우울한 사람과 불안해하는 사람

 

5. 마음의 추락, 쿠션이 필요하다

 

수치에 매인 사람

 

6. 비방의 독화살, 남도 쏘고 나도 쏜다

 

당신이 통제하고 싶은 사람

 

7. 타인을 통제하는 건 하나님께 훈수 두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와 배우자

 

8. 아직 흠이 있지만, 우리는 공사 중이다

 

'남녀 간 결혼'의 울타리 밖에서 성을 추구하는 사람

 

9. 안 보이는 길을 비춰 줄 빛을 찾고 있다

 

역기능 가정의 사람

 

10. 가족에게 기대하고 목맬수록 외로웠다

 

어린아이

 

11. 기성세대가 정한 대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사람

 

12. 현실보다 더 분명한 진실을 본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

 

13. 도움은 필요하지만, 폄하는 아프다

 

다른 인종의 사람

 

14. 인종 차별은 생각보다 뿌리 깊다

 

 사회 부유층과 권력층

 

15. 사명과 탐욕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용서하기 힘든 가해자

 

16. 죄가 클수록 가장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다

 

낙태의 기로에 놓인 임신부와 태아

 

17. 생명을 저울질할 수는 없다

 

도피처를 찾아 떠도는 난민

 

18. 담장 안에만 머무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

 

19.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함께 예배할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

 

20.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화해한 영혼이 가장 강하다

 

Part 3. 그분의 용납과 사랑 안에 충분히 머물라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처럼

 

21. '예수님과 함께'가 먼저다

 

 주

 

 * 본문 맛보기

 

<27쪽 중에서>

 

오직 한 가지 관심사로만 이뤄진 관계가 일차원 우정이다. 공통관심사는 취미에서 진로, 공통의 적, 교육 철학, 신앙까지 다양하다. 일차원 우정은 '일치'를 우선시한다. 그래서 서로의 견해나 신념,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맹점도 지적하지 않는다. 이런 우정 관계에서는 다양성에서 비롯하는 자연스럽고, 구원하고, 인격을 키워 주는 긴장이 발생할 수 없다. 유명인사끼리만, 아이가 있는 사람끼리만, 결혼한 사람끼리만(혹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끼리만), 운동 마니아끼리만, 같은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끼리만, 젊은 세대끼리만(혹은 나이 든 세대끼리만), 그리스도인끼리만, 백인끼리만(혹은 유색 인종끼리만), 논리적인 사람끼리만(혹은 감성적인 사람끼리만), 부유한 사람끼리만, 즉 같은 부류끼리만 어울리면 관계는 반드시 빈곤해진다. 일차원 우정이 겉으로는 끈끈해 보여도 처음 서로에게 끌린 한 가지 면이 보다 광범위하고 깊은 차원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피상적인 우정에 머물 수 있다.

 

<37-38쪽 중에서>

 

수치. 나 자신이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막연하고도 불안한 느낌. 이 수치는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하고 남들의 어려움에는 무관심하게 만든다. 수치는 먼저 자신부터 고쳐야 다른 이를 섬길 수 있다고 말한다. 수치는 친구와 이웃들, 특히 가난하고 외롭고 억압받고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작은 유익이라도 끼칠 수 있으려면 더러운 자신부터 씻어야 한다고 말한다. 수치는 먼저 자신이 괜찮아야 남을 잘 돌볼 수 있다고 말한다. 수치는 자신이 건강하지 않으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말한다.

 

<55-56쪽 중에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출발점은 그저 쉬면서 받는 것이다. 출발점은 멈추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분과 '함께하는' 게 무엇인지를 배워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할수록 그분을 더 닮아 가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루는 것이라기보다는 빠지는 것이다. 사랑을 가까이 하면 그 사랑에 물든다.

 

<83쪽 중에서>

 

〈뉴욕 타임스〉 기자 팀 크레이더는 끊임없이 화낼 대상을 찾는 세태를 표현하기 위해 "분노 포르노"(outrage porn)란 용어를 만들어 냈다. 편집자에게 날아온 수백 개의 댓글과 편지를 토대로 그는 많은 현대인이 누군가를 가해자로 몰아 자신이 옳다는 느낌을 얻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분노 포르노는 아무런 개인적인 책임 없이 다른 인간을 희생시키며 싸구려 쾌감을 맛본다는 점에서 포르노와 유사하다. 분노 포르노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남들에게 공개적으로 망신 주길 좋아하는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신약 시대의 바리새인도 남을 경멸하기로 유명했다(눅 18:9 참조).

 

<135쪽 중에서>

 

병든 가정 안에서는 사랑이 식어 적대감으로 변하고 결국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긴다. 병든 가정 안에서는 배우자가 모르고 저지른 실수를 고의적인 잘못으로, 깜박 잊은 것을 원래 부주의한 것으로, 피곤을 게으름으로, 합당한 지적을 분노로, 건설적인 비판을 가혹한 거부로, 사과를 속임수로, 용서를 생색으로 매도한다. 이렇게 상대방을 좋게 봐주지 않고 동기를 의심하고, 남편과 아내가 매일같이 서로에게 으르렁거리고, 겸손한 사과와 은혜와 용서가 사라지면, 그것은 더 깊은 차원에서 병들어 있다는 신호다. 대개 그것은 둘 중 한 사람 혹은 둘 다 상대방을 구원자요 진북(true north)으로 여길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상대방을 행복과 만족, 의미의 궁극적인 '근원'으로 보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239-240쪽 중에서>

 

우리가 왜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의 신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 왜냐하면 예수님이 먼저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나사렛 예수의 관점에서 '우리'는 세상 끝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분께 우리는 그분이 처음 거두신 열두 제자만큼이나 중요하다. '우리'가 굶주릴 때 그분이 먹이셨다. '우리'가 목마를 때 그분이 마실 것을 주셨다. '우리'가 집 없이 떠돌 때 그분이 오셔서 거처를 마련해 주셨다. '우리'가 참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거짓 포도나무에서 시들고 있을 때 그분이 우리를 자신에게 접붙이셨다. '우리'가 부유한 가운데 조용한 절망의 삶을 살고 있을 때 그분이 우리를 심령이 가난한 자를 위한 그분의 식탁에 불러 주셨다. '우리'가 죽고 있을 때 우리가 살도록 그분이 우리 대신 돌아가셨다. 그분은 우리가 난민 신세에서 벗어나 영원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스스로 난민이 되셨다. 그러니 우리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누군가를 섬기는 게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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