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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 예수님이 땅에 쓰신 글씨와 미투(#MeToo)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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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투데이 작성일18-03-1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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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교회는 돌을 들 자격이 없다

 

땅에 쓰신 글씨 예수
운보 김기창, ‘간음한 여인과 예수’.

성경에는 하나님의 손가락이 네 번 나온다. 손가락으로 천지를 만드셨고(시 8:3), 손(가락)으로 땅의 흙을 빚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으며(창 2:7),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했던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의 손가락들이 벽에 글씨를 썼고(단 5:5),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위해 예수님이 성전 마당 흙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셨다. 모두 하나님을 모신 성전(천지, 성전, 사람)과 관련되는 구절들이다. 

 

유대인의 3대 축제의 하나인 장막절(초막절) 직후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예루살렘 성전 뜰에 뭔가 썼다면, 중요한 내용일 것이다. 더욱이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유일하게 글을 쓰신 경우인데다, 그 글을 보고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잡힌 간음한 여인을 두고 손에 쥔 돌을 버리고 떠나갔다면, 예사 내용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몸을 굽히고 낮추어 손가락으로 먼지 나는 땅에 두 번 글을 쓰셨는데, 무엇을 썼는지 분명하지 않다. 과연 어떤 말을 썼을지 짐작해 보자. 

간음한 여인과 예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중 한 장면.
◈건기가 끝나는 초막절의 예루살렘 성전

 

이 말씀의 배경은 7장에서 보듯이 유대인의 가을 절기의 절정인 초막절이다. 초막절은 나팔절로 시작되어 속죄일을 지나 장막에서 지내는 추수감사절로, 종말에 이루어질 메시아 왕국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봄 축제(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까지) 이후 4개월 간 지속된 건기(乾期)가 끝나고 우기(雨期)가 시작되기 직전의 축제였다. 

 

바짝 마른 땅에 바람이 불면 먼지가 날렸다. 불의한 식민 제국과 타락한 유대교 성전 체제가 만든 물적·영적 기근을 견디던 사람들은 비를 기다렸고, 우물에 물이 차기를 기다렸고,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렸다. 그가 오시면 자유의 공간인 광야에 나가 샬롬의 상징인 종려나무 잎으로 초막을 짓고 동거하며(=장막에서 함께 살며) 자유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 것이다.


예수의 초림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고 동거하는 새 성전을 만드시는 사건이었듯, 재림 사건은 새 하늘 새 땅에서 함께 거하는 종말론적 초막절 사건이 될 것이다. 마라나타!  


이 명절의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요 7:37-38)." 과거 출애굽 광야에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듯, 정치적 압제와 영적 기갈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와 함께 더불어 평등하게 마시고 먹는 식탁 공동체가 이루어질 것이다.

땅에 쓰신 글씨 예수
◈몸을 굽히고 쓰신 글

 

7장에서 초막절에 완성될 메시아 왕국이 바로 당신으로 인해 성취될 것을 말씀하신 예수 앞에, 8장에서 성전 체제를 유지하던 율법학자,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올무를 놓았다. 이른 아침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잡아 와서, 모세의 율법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예수를 시험했다. 수치를 당한 여인은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다. 정죄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기세등등했다. 

그러자 예수는 먼지 날리는 메마른 땅바닥에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시고는 말했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는 다시 몸을 굽혀서 맨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먼지 나는 흙으로 아담을 빚어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듯, 한 여인의 생명을 살리고자 먼지 나는 흙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셨다. 

무슨 글이었을까? 힌트는 이야기 속에 주어져 있다. 초막절, 생수, 간음죄, 정죄, 혐오, 수치, 성전, 땅바닥에 쓴 글이 동시에 나오는 구약의 구절은 바로 예레미야 17장이다. 

"우리의 성전(聖殿)은 영광스러운 보좌와 같다. 처음부터 높은 산 위에 자리를 잡았다. 주님, 이스라엘의 희망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버리는 사람마다 수치(羞恥)를 당하고, 주님에게서 떠나간 사람마다 생수(生水)의 근원이신 주님을 버리고 떠나간 것이므로, 그들은 땅바닥에 쓴 이름처럼 지워지고 맙니다(렘 17:12-13, 새번역)." 

예레미야 17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4절: 유대인의 가증한 우상숭배의 죄는 철필로 마음판에 다이아몬드 촉으로 성전 뿔에 새겨질 정도로 증거가 분명하고 심각하여,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될 것이다. 5-11절: 선민이라는 자존심과 자신의 의를 의지하고 타인을 정죄하는 율법적 인간적 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시냇가의 나무처럼 가뭄이 와도 푸른 잎과 철따라 여는 열매를 자랑할 것이다. 12-18절: 주를 버린 자는 수치를 당하고 땅바닥에 쓴 이름처럼 지워지지만, 주를 의지하는 자는 성전에서 보호를 받고 주를 찬양할 것이다.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온 율법학자,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그 여인보다 더 심한 온갖 죄를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율법적 의를 자랑하고 예수를 올무에 빠지게 하려고 음모를 꾸몄다. 철필로 돌 같이 굳은 마음 판에 그들이 저지른 성범죄와 횡령죄와 세습죄와 우상숭배의 죄가 빼곡히 기록돼 있고, 금강석 펜촉으로 성전 벽마다 범죄 사실이 상황판처럼 매일 보도되고 있는데도, 그들은 뻔뻔하게 한 여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예수를 치려고 한다. 

마치 한국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교회 벽마다 "데겔(저울에 다니 함량이 모자란다) 메네 메네(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우르바신(나라가 나뉘어 다른 나라들에게 주어질 것이다)"을 쓰는 듯하다(단 5장). 

그때 예수는 손가락으로 땅바닥 흙 속에 다음과 같이 썼을 것이다.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율법학자와 서기관들은 곧 바로 그 말씀이 예레미야 17장 9절임을 알았다. 예수께서 말했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간음한 여인과 예수
영화 <선 오브 갓> 중 한 장면.

그리고는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우리의 聖殿은 영광스러운 보좌와 같다. 처음부터 높은 산 위에 자리를 잡았다. 주님, 이스라엘의 희망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버리는 사람마다 羞恥를 당하고, 주님에게서 떠나간 사람마다 生水의 근원이신 주님을 버리고 떠나간 것이므로, 그들은 땅바닥에 쓴 이름처럼 지워지고 맙니다." 바로 예레미야 17장 12-13절이었다(나는 그렇게 짐작한다). 

 

이어서 예수님은 땅에 그 곳에 모인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들과 유명인의 이름을 하나씩 쓰기 시작했다. "전병욱, 이동현, 김기동, 김해성, 고은, 이윤택, 오달수, 안태근, 안희정, 김기덕, 조희완, 한만삼...." 

자기 이름을 알 뿐 아니라 숨은 죄가 드러난 것을 본 목회자와 신학자와 지도자들은 하나씩 손에 쥐어든 돌을 버리고 슬그머니 자리를 떠난다. 어른부터, 지도자부터, 유명인부터 그 이름이 쓰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으로 쓰는 이름들 

예수님은 지금 수치를 당한 여인의 모습으로 한국교회에 와서, 먼지 나는 메마른 마당에서 손가락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쓰고 있다. 그 이름은 한국교회가 저지른 우상숭배, 간음, 도적질, 거짓말로 지은 바벨탑을 보여주는 이름들이다. 생수의 근원인 주님을 버리고 돈을 섬기고 권력을 섬기고 출세를 지향했던 메마른 마음 판에 주님의 피 흐르는 손가락이 나타나 "메네 메네 데겔(함량 부족이라 곧 망할 것이다)"을 쓰고 있다. 쓰는 이름마다 피가 묻어 있다. 

예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한국교회는 돌을 들 자격이 없다. 수치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Me Too!"를 외치는 여인을 정죄하고 혐오하는 대신 보호하고 살리고 친절을 보여야 한다. 함께 땅바닥으로 내려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인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있는 예수를 따라 함께 몸을 낮추고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만드신 이 땅과 교회를 그의 영광스러운 보좌로 만들어야 한다. 

희망은 교만과 거짓과 정죄의 돌을 움켜진 지도자들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시고, 빈손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의 빈손에 있다. 

미투 운동에 예수님의 손가락이, 먼지 나는 흙에 이름을 쓰고 있다. 

 

땅에 쓰신 글씨 예수

옥성득 
UCLA 임동순·임미자 석좌 한국기독교 부교수 

<새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첫 사건으로 본 초대 한국교회사> 외 여러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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