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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 스스로 왕이 된 각 사람들의 비참한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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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투데이 작성일18-04-1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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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북뉴스 서평] 우리는 어떻게 왕을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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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버리다: 사사기

데이비드 벨드먼 | 김광남 역 | 이레서원 | 136쪽 | 8,000원

 

사사기는 카오스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시지푸스의 저주처럼 언제나 제자리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사사기를 묵상했다. 28번개로 나누어 주말을 제외한 평일 동안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사사기를 파고 또 파고들었다.

 

마지막 사사기를 덮었을 때 마음이 한없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처음 사사기를 시작할 때 정복했던 가나안 족속들보다 더 악한 괴물들이 되어 있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사사기를 대하는 독자들이라면, 사사기가 결코 쉽지 않은 성경임을 알 수 있다. 사사기는 사건과 해석이 모호한 경계로 이루어져 있고, 추측하기 힘든 비연대기적 서술 기법을 채용했다.

어쩌면 사사기의 모든 내용에 불신이 갈 만큼 난해하다. 그럼에도 사사기가 수많은 신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매력적인 사사들의 이야기 때문이다. 사사기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어나간 독자들은 '매력'이 '독'이 되어 우울해질지도 모른다. 

 

사사기에는 희망이 없다. 사사기는 하나님의 공의가 철저하게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임하는 사건들로 꼼꼼히 채워져 있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사사기는 비극이다'라고 선언할 때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렇다. 사사기는 비극이다.


비극적인 사사기를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단지 왕이 없었기에 자기 소견대로 행했다는 허물을 들추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사들이라도 인간적인 면이 있고, 허물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실제로 사사기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객관적 기술로 일관하고 있다. 즉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은 극히 미미(微微) 하다. 그럼 사사기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일단 나의 판단과 해석은 뒤로 미루고 이 책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목차를 열기 전, 아니 목차를 열었을 때 왼편 광인(狂人)의 독백이 나온다. 우리는 그 광인을 니체라고 부른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 어떻게 우리가 모든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가장 강력했던 존재가 우리의 칼날에 피를 흘리며 죽었다...."

광인의 이야기는 몇 문장 더 추가되어 있지만 '신은 죽었다'는 표현만으로 충분하다. 사사기의 주제는 '신의 죽음', 곧 '하나님의 죽음'이다. 사사기는 신의 무덤이다. 신은 죽었다. 아니 죽임을 당했다. 신을 죽인 살인자들은 신이 구한 그의 백성, 그의 자녀들이다. 죽을 수 없는 신의 죽음은 무엇을 말할까? 

이 책은 사사기 주석이나 강해, 해설서가 아니다. 이레서원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말씀' 시리즈가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사사기를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조망하고 재정립하고 있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다면 2-7장까지 5장으로 구분하여 사사기에서 중요한 주제들을 엮어 풀어낸다. 

2장은 이야기 문맥으로 본 사사기, 3장은 사사기에 나타난 죄의 사이클, 4장은 사사기가 반복적으로 되뇌는 '왕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5장에서는 '가나안화'. 6장은 '폭력', 그리고 7장은 '사사기의 지속적인 증언'을 이야기한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주제이다. 7장은 사사기와 현대를 잇는 적용과 해석의 작업이기 때문에, 2-6장까지를 살펴보자. 

지금 몇 시인가? 지금 어디에? 

2장은 성경의 창조와 계시록 사이의 이야기 속에서 사사기가 갖는 시간을 묻는다. 사사기의 핵심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언약이 성취되었으나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살아가는 소명을 버린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켰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다. 이제 하나님께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되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했다. 

사사기 안의 시계는 멈춰 있다. 구원 이후,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화를 거절했다는 말과 전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차고 있는 시계의 시간은 '지금'이다. 

악의 사이클을 다루는 3장에서는 변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또'라는 표현은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이 얼마나 악한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우상과 하나님 사이를 계속하여 오간다.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 하나님은 사사를 세워 구원하신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들은 우상 앞에 있다. 우상 앞은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는 것이다. 귀를 쫑긋 세우고 사사기 안에서 들리는 기도의 소리를 측정해 보자. 처음에는 높았고 빨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소리는 점점 사그라들었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줄어들었다. 

삼손 때는 아무도 전쟁에 동참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삼손을 블레셋에게 끌고 갔다. 삼손 이후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사사기는 묻는다. 지금 어디 있냐고? 

사사기의 장소는 '바로 여기'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은 내가 하나님을 죽인 살인 현장이다. 

삼손
사사기의 사사 중 하나인 삼손을 주인공으로 곧 개봉하는 영화 <삼손>.

사사 시대에 왕이 없었다고? 천만의 말씀 

 

네 번 나온다. 가장 처음은 17장 1절이다. 이곳은 삼손의 죽음 이후 미가의 제사장 이야기가 시작되는 중간에 나온다. 그리고 다시 18장 1절, 19장 1절에 나오고, 마지막 한 번은 사사기를 닫는 문장으로 서술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그렇다면 사사기 기자는 사사들을 왕으로 인정했단 말일까? 실제로 사사들은 왕이었다. 아니, 왕처럼 군림했다. 특히 기드온 이후 사사들은 왕이란 칭호를 달지는 않았지만 실제적인 왕이었다. 그러나 사사기는 진짜 왕이 누구인지 암묵적으로 반복한다. 그 왕이 누구인가? 

바로 '자기'다. 왕이 없으므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람들. 바로 자기가 왕이다. 왕의 죽음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왕이 없기 때문에 왕이 많은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하지 않던가. 사사 시대는 왕이 없는 시대가 아니라, 모두가 왕인 시대였다. 왕을 죽인 그 사람이 왕이다. 

그럼 다시 물어보자.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다스릴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통치는 무엇으로 가능할까? 그것은 율법이다. 저자는 4장 중간에 의미심장한 문장을 삽입한다. 

"왕은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를 알고 그분의 뜻을 따라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토라)에 깊이 잠겨야 한다. ... 여호와의 토라, 즉 그분의 '거룩한 백성과 제사장의 나라를 위한 선언문' 위에 세워져야 한다(76쪽)." 

누가 왕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시다.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는가? 율법을 버리고 '자기'의 소견을 따랐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부분에서 아담과 하와의 반역을 다룬 것은 매우 적절하다. 

그렇다. 사사기는 아담의 반역을 그대로 닮아 있다. 아담은 신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이 신이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원죄 또는 타락이라고 말한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왕을 죽였다. 그래서 왕이 없다. 정말일까? 아니다. 진짜 왕이 있다. 

그 왕은 바로 '나'이다. 내가 왕이다. 

너는 누구냐? 

5장의 가나안화와 6장의 폭력은 다른 듯 같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열매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이끈 이유는 단지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음의 두 구절을 읽어 보자.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창 15:1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6)". 

하나는 악에 대한 심판이며, 다른 하나는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와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멸망 시켜야 할 가나안 사람보다 더 가나안 사람이 되었고, 더 악한 사람들이 되었다. 

저자는 이것을 '주변 문화에 동화되는 것'(94쪽)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한 비전을 버렸다. 그것은 망각의 칼이며, 안일의 검이다. 

비전을 버린 '나'는 살인자가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왕을 죽였는가? 

왕을 죽였다고? 우리가 신을 죽일 수 있다고? 천만의 말씀. 우리는 왕을 죽이지 못한다. 왕의 심판을 받을 뿐이다. 사사기는 왕에게 반역하여 스스로 왕이 된 각 사람들의 비참한 종말을 보여준다. 분명 사사기는 비극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사기는 희극이다. 

왕을 죽이고 싶다면 반역의 칼을 들어라. 말씀을 망각하고 각기 자기의 소견을 따르라. 과거의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오직 지금과 여기에 몰입하라. 소망을 버리고, 탐욕을 즐겨라. 자신을 철저히 합리화시키라. 우리의 수많은 칼, 그 칼이 신을 죽인다. 광인이 깨어날 때 그 칼은 자신의 심장에 꽂혀 있었다. 

정현욱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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