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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던 “성경에 있는 그대로의 ‘예수’를 보자”

[크리스찬북뉴스 서평] 제임스 던이 말하는 예수 |

조회 149|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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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는 누구인가?

제임스 D. G. 던 | 양지우 역 | 비아 | 140쪽 | 8,000원

 

제임스 던, 보수적 성향의 한국 장로교회에 속한 필자에게 그의 이름은 친근감보다는 경계의 대상이다. ‘바울에 관한 새 관점주의자’의 주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낯선 인물인 제임스 던의 예수에 관한 서술은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최근 들어 새 관점주의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적지 않은 놀라움을 선물로 받고 있다.

 

하나를 예로 들면, 지금까지 필자의 성경 독법이 교리적 관점에 치우친 편협한 관점이었다는 점이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기보다는 이미 아는 성경 해석 프레임을 통해 나도 모르게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습적 성경 읽기는 성경의 세계가 갖는 낯섦과 경이를 식상한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 수 있다. 새 관점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온전히 동의할 수 없으나, 성경 읽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즉 제임스 던의 성경 읽기는 객관적이며, 사회-역사적 관점을 견지한다. 그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기에 거스르는 부분도 보이지만, 성경을 치밀하게 파고드는 그의 집착은 성경학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어서 좋다. 필자는 짧지만 강력한 제임스 던의 이 책을 중요한 논지를 따라 간략하게 요약하고 총평을 하고자 한다.

 

이 책은 서론을 포함하여 약 1백쪽 분량의 작은 소책자이다. 1장에서는 예수의 생애를, 2장에서 예수의 활동을, 마지막 3장에서는 예수의 자기 이해를 다룬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간략하게 ‘공관복음이 전하는 예수 이야기가 … 초기 제자들의 기억과 깨달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에(111쪽)’ 굳이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즉 제임스 던은 비평적으로 복음서를 살피면서 예수의 이야기가 꾸며진 것이 아니며, 제자들과 초대교회 안에 확고한 사실과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과 방법으로 제자들과 초대교회 안에 ‘예수’는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전문가나 학자들을 위한 저술이 아니고, 일반 신자들을 위한 간략한 소개서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복음서의 저작 시기와 자료

 

저자는 서론에서 복음서의 저작 시기와 Q(quelle)에 대해 언급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시작이며, 성경을 읽는 관점에 주의를 요구한다.

 

신약성경은 순서상 복음서가 서두에 위치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문서들은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후서와 같은 바울서신들이다.

 

바울서신들은 약간의 학자들 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주후 50-60대 초반이다. 이에 비해 가장 빠른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마가복음의 경우 가장 이른 시기를 잡아도 60년대 중반이며, 심지어 예루살렘 멸망 이후인 70년대로 잡기도 한다.

 

즉 복음서들은 예수의 죽음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르코(마가) 복음서는 예루살렘 멸망 직전이나 직후인 기원후 70년경 기록되었다고 보고, 마태오와 루가 복음서는 20년 정도 더 지난 시점에 저술되었으리라고 봅니다. 기록으로 만들어진 Q는 마태오와 루가 복음서 이전에 이미 있었을 것입니다(10-11쪽)”.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도 일반 목회자들이 간과한다. 바울서신과 복음서와의 긴장이 발생하고, 복음서가 기록되기까지의 전승의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복음서는 단지의 기록이 아니라 일종의 변증서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당시 여러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음서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복음서들이 예루살렘 멸망 이후 성전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황 속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은 복음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주의하도록 요구한다.

 

예수의 생애

 

이제 예수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이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의 내적·외적 증거들은 예수가 1세기 초에 존재했음이 분명하다.

 

예수의 초기 생애에 대한 몇 가지의 난제는 이렇다. 먼저 예수는 실제 나사렛 출신일까? 구약 성경은 나사렛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당대에서 그곳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나사렛을 왜 강조해야 했을까? 던은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예수와 연결될 이유가 딱히 없는 이 마을이 예수의 고향으로 언급된다는 사실을 예수가 이 지역에서 실제로 성장했음이 드러내는 분명한 증거입니다(24쪽)”.

 

확실히 던의 생각은 옳다. 나사렛을 언급하는 것이 부정적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음에도 연결시킨 것은 그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세례 요한의 세례이다. 마가는 정확하게 요한의 세례가 ‘죄 사함(막 1:4)’의 세례라 기록한다. 예수도 이 세례를 받았고, ‘그럼 예수도 죄가 있었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던은 이 부분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으로 남겨둔다. 세례 후 40일 동안의 광야 시험은 어떤가? 마태와 누가는 상세하게, 마가는 매우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요한복음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의 공생애를 서술하는 부분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공관복음은 ‘풍성한 비유와 경구를 활용해 가르쳤다면, 요한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는 긴 연설과 논쟁을 통해 사람들을 깨우친다(28쪽)’.

 

즉 공관복음서는 유독 갈릴리 사역에 집중하지만, 요한복음은 예루살렘 중심이며 활동보다는 ‘말과 활동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는데(29쪽)’ 몰입하고 있다.

 

어쨌든 예수의 초기 활동은 갈릴리 중심이었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갈릴리에 남아있을 수는 없는 일, 결국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문제는 ‘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만 했는가?’ 아니면 ‘왜 올라가려고 마음먹게 되었는가?’이다. 던은 ‘주의 변모’ 사건과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장면(31쪽)’에 주의한다.

 

이즈음, 예수는 빈번히 인자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견한다. 누가는 이 시점에서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32쪽)’고 말한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올라간 다음 날 성전으로 향했고, 기이한 행동을 시작한다. 바로 ‘성전 정화’를 시작한다. 이 사건은 복음서 기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공관 복음서 기자들이 대체로 공생애 마지막에 위치시키지만 요한은 가장 서두에 위치시킨다.

 

유월절 식사 문제는 가장 난해한 복음서 문제 중 하나다. 공관복음서는 유월절 당일이라는 암시를 주고, 요한복음은 그 하루 전날로 기록한다.

 

예수 고소 장면에서도 복음서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한다. 마가는 예수의 한 마디가 신성모독이었고, 처형할 명분을 얻게 되었음을 알린다. 바로 이 부분이다.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막 14:61-65)”.

 

결국 예수는 빌라도에게 넘겨지고 십자가형을 당한다. 그의 죄목은 ‘유대인의 왕’, 즉 반란죄였다. 그러나 예수는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이곳에 있지 않다’고 분명히 선언한다.

 

그럼에도 예수는 반란죄로 죽임을 당했다. 왜냐하면 반란죄만이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그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속죄양으로서의 흠 없음을 증언한다(요 19:36).

 

예수의 활동과 자기 이해

 

이제 예수의 생애에 근거하여 예수의 활동과 자기 이해를 살펴보자. 던은 두 장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지만, 필자는 하나로 묶어 풀어가려고 한다. 던이 기존의 정통 신학자들과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는 곳이다. 예수의 활동을 예수의 관점 또는 해석으로 보는 것이 옳겠다.

 

먼저 던이 주목한 것은 예수가 주장한 ‘하나님 나라’이다. 예수가 주장한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의 인식에 깊이 뿌리 내린 ‘온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46쪽)’에 뿌리내리고 있다. 즉 예수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해석이 아니란 말이다.

 

둘째는 예수가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는 ‘전형적인 가치와 기대를 뒤엎는 것(47쪽)’이다. ‘신랑’이나 ‘새 천 조각’, ‘새 포도주’ 등으로 표현되는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와 연속적이면서 동시에 변혁적 모델이다.

 

던은 예수와 제자들의 간극을 발견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50쪽)’로 대체되었다는 것과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를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역(易)일 수 있다. 왜냐하면 바울서신이 복음서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던은 하나님의 나라가 ‘죽음과 부활’로 대체된 이유를 이렇게 추측한다.

 

“예수가 사형당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펼쳐진다거나 실현되리라는 예수의 주장을 고수하기에는 정치적 위험부담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51쪽)”.

 

던의 주장에 의하면 사도들과 제자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시대적 환경에 맞게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지만, 제자들은 로마의 오해와 핍박을 피하기 위해 ‘죽음과 부활’로 대체시킨 것이다.

 

그러나 허타도의 경우 다르게 해석한다. 허타도는 예루살렘 멸망과 로마에서의 고난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예수의 메시지를 바꿀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직접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는 와중이었기에, 또는 이런 사건들의 여파 때문에,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소망들에 미혹되어 길을 잃지 말라고 신자들에게 경고하면서, 예수의 제자라면 담대하게 그들이 전할 메시지를 선포해야 하며 이 때문에 그들이 치러야 할 수도 있는 희생은 무엇이든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특히 시의 적절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허타도 <주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은 로마의 눈치를 볼 만큼 겁쟁이들이 아니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생명과 맞바꿀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던은 예수 기적과 축귀 사역이 ‘예수의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과 ‘가장 이른 시기부터 남아 있었다는 점(64쪽)’을 인정한다. 기적과 축사는 전적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지며, 그 이름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지 알 길이 없다.

 

심지어 세례요한의 세례가 ‘죄 사함’이 가능한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예수는 말 한 마디로 죄를 용서한다. ‘당시 종교 제도의 관행에 젖어있던 사람들에게 이는 매우 충격적인 일(67쪽)’이었을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경악시킨 사건은 죄인들과의 식탁 교제를 통해서 확연히 드러난다. 다양한 비유들을 통해 죄인과 의인을 역전시킬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선언한다(눅 24:47). 던은 이러한 예수의 사역이야말로 진정한 초대교회가 가진 구원의 열쇠로 설정한다.

 

“예수의 명령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더는 제물이 필요치 않음을 암시합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속죄 제물의 역할을, 그리고 제물을 바치는 사제의 역할 또한 끝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극적인 전환을 예상하지는 못했으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죽음이 구원의 열쇠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강조합니다(71쪽)”.

 

사실 속죄 제사 없이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것은 경악을 넘어 신성모독적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히 9:22)’고 분명히 선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피와 속죄가 반드시 결부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구약 성경 안에는 죽지 않고 승천한 두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즉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법칙이 고대로부터 깨져 있다.

 

이러한 초법적 사건은 속죄 제사 없이도 충분히 죄가 사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어떤 근거에서 가능한가이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의 용서 선언’을 통해 해결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본다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죽음과 부활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해석’한 것이라고 보아야 옳다.

 

던은 나아가 요한이 서두에 기록한 성전 정화 사건을 예수 자신이 ‘새로운 성전으로 옛 성전으로 대체한 사건(75쪽)’이라고 강조한다.

 

던은 복음서에 나타난 기록들은 일관되고 한결같으며, ‘정확한 혹은 매우 근접한 기억을 통해 예수가 미친 영향을 잘 전승되고 있다(109쪽)’고 결론내린다.

 

비록 여러 가지 난제와 모호한 점이 있음에도, 그러한 것들 때문에 예수의 주장들이 잘못되었다고 선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2014년 예수의 재림을 소재로 한 드라마 <블랙 지저스(Black Jesus)>에서는 마약을 하고 욕설을 하는 흑인 예수를 등장시켜 논란을 불렀다. ⓒAdult Swim 캡처

 

평가

 

리처드 보컴은 그의 책 <예수와 그 목격자들>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목격자 증언은 사건에 개입한 참여자들로부터 나온 내부자 지식을 제공한다. 동시에 목격자 증언은 사건과 관련된 해석도 제공하는데, 이는 증언에는 사실과 의미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던의 이 책은 짧지만 강력하다. 역사적 예수 논쟁과 복음서 전승 비평에 대한 논쟁에 관심이라도 가져본 이들이라면, 던의 주장들이 얼마나 무게 있는 것들인지 쉽게 파악할 것이다.

 

복음서와 예수의 생애를 살피면서, 다양한 주제들을 제자들의 예수에 대한 기억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경이롭다. 던은 집요하게 복음서의 사건들에 천착한다. 가이드임에도 불구하고, 사복음서가 갖는 특징들은 명료하게 보여준다.

 

던에 의하면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의 문헌들은 제자들의 해석이며, 의미가 부여된 공유된 기억에 뿌리내리고 있다. 예수의 자기 이해 역시 예수 자신의 발언과 행위들에 대한 제자들의 해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던의 관점들은 개혁자들의 관점에서 보기에 과도한 인성의 강조로 보인다. 예수의 자기 이해에서 본다는 초기와 중기, 후기의 자기이해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수는 자기의 사명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었지만 ‘언젠가부터(87쪽)’ 확신하기 시작했고, 세례가 사명에 매진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예언자로서의 예수는 ‘예언자로 설명했던 예수에 기대어 (제자들의) 발전된 관점(92쪽, 괄호는 필자 삽입)’으로 해석한다.

 

즉 던은 성경에 있는 그대로의 예수를 보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러한 제안조차 그의 관점이고 해석인 것은 틀림없다.

 

그 동안 과도한 신적 예수로만 알았던 보수적 신앙인들에게 던의 주장들은 신선하면서도 약간의 경계감을 갖게 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예수의 모습이 점차 확장되었다(102쪽)’는 던의 주장은 모호하다. 그렇다면 복음서들이 한 번이 아닌 여러 저자에 의해 시간적 간격을 두고 편집되었다는 말이 아닌가?

 

던이 바라본 예수는 시간의 여정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찾아가고, 발전한다. 제자들은 예수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며 자신들만의 저술 방식에 따라 문헌들을 작성한다.

 

비록 적지 않은 부분에서 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그동안 교리적 관점에서 읽었던 성경을 낯설게 보도록 촉구한다는 점에서 도움을 준다.

 

던이 바라본 예수는 보수주의적 관점을 가진 필자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다시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도전을 숙제로 남겨준다. ‘바울에 관한 새 관점’과 다르게 성경을 새롭게 읽도록 촉구한다. 그의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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