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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신가?

[크리스찬북뉴스 서평] 마땅히 경배받으셔야 하는 분 |

조회 437|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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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리처드 보컴 | 이형일, 안영미 역 | 새물결플러스 | 480쪽 | 22,000원

 

서론

 

우리가 예배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 책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예배하였는지에 대해, 제2성전기 유대교 유일신론과 유대교 신학의 문맥과 당시에 문학과 언어를 통해 학문적이고 신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혹자는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알면 될 것이지, 이렇게 딱딱하고 어려운 신학 전문서적이 신앙에 무슨 유익을 주는지 의심스러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학문적이고 신학적인 연구를 통해, 그분이 단지 인간의 인성만 갖춘 분이 아니라, 신성을 갖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가능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신성에 가까워진 모범적인 인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아들이셨고 또한 유대교가 유일신 하나님을 예배했던 그 하나님과 동등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본체이셨다. 그분은 유대교가 가지고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정체성을 그대로 가진 분이셨다.

 

오늘날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단순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분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고, 인류가 모두 배워야 할 성인으로 아는 부류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예수님은 겨우 그 정도의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은 처음부터 하나님이셨고 은혜와 진리가 가득하고 신성이 충만하셨으며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이셨다. 그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셨고 만물을 발 아래 두어 강력한 능력으로 통치하시는 권세자이셨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초기 기독론은 최고 기독론이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우리가 예배하는 예수님은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고 제자들이 만들어낸 거짓 인물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권위를 동등하게 가지는 본질상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 올려졌던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경배가 예수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수님은 과연 그러한 분이셨고, 이 땅의 백성과 만물이 엎드려 경배해야 될 분이시다.

 

책은 총 8개의 논문으로 구성돼 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성서신학과 유일신론의 문제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초기 유대교 유일신론의 본질, 초기 기독교에 나타난 예수 경배, 하나님의 보좌와 예수 경배, 바울의 신적 정체성과 기독론, 히브리서에 나타난 예수의 신성, 마가복음에 나타난 버림받은 자들과 하나가 되신 하나님으로 구성된다.

 

필자는 본 글에서 책을 통해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바를 4가지로 나눠보고자 한다.

 

1. 죽으시는 분

 

최초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님은 부활하여 하늘 우편에 계시고 하늘 보좌에 등극하셔서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믿었다. 그리고 온 세상의 주권을 가지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고 세상을 보존하시다가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을 믿었다.

 

유대교 신앙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일체의 경배가 예수님께 동일하게 적용되고 영광을 올려드렸다. 빌립보서 2장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초대교회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이유를 분명히 알았다. 그분이 부활하고 승귀하신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죽음이 먼저 선행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십자가를 지신 것이고, 그 십자가는 인간과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는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이었고, 사탄의 승리라고 생각했던 교만과 오만을 한 방에 해결하는 결정타였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초대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해하였다. 그 분의 피흘림으로 죄가 용서되고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고 그가 찔리고 상함으로 허물이 벗겨졌다. 십자가의 피뿌림으로 우리가 정결케 되었고 각 개인 성전이 되고 교회로 모이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죽음에 넘겨지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시다.

 

2. 부활하시는 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 로마와 유대교는 그들의 법과 종교로 이 소란을 잠재우고 지혜롭게 처리했다고 여겼다. 어둠의 권세는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사슬로 묶고 그의 존재와 흔적을 지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다.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던지셨다. 두렵고 떨렸지만,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느냐고 소리치셨지만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을 믿고, 확신 가운데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역사의 반전이 나타난다. 죽은 자가 살아나셨다. 생명을 삼키는 사망의 세력을 물리치고, 어둠을 제거하고 주님이 나타나셨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진 것처럼 하늘이 갈라지고 그분이 어둠도 이기는 분이심이 증명된다.

 

변화산에서 하늘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이 인정되었다. 나무에 달려 죽었으니 죽어 마땅한 자였으나 다시 사셨으니 그 율법을 성취하는 분이심이 드러났다.

 

그 분이 죽으실 때 성전에서 휘장이 찢어지셨으니 이제는 그 갈라진 휘장으로 모든 사람이 다시 살 수 있게 들어올 수 있는 부활체의 통로가 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초대교회 공동체에게 한량없는 위로와 힘이 되었다. 살인과 강도와 폭력의 위험 속에 있던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가 자신들을 모든 사망에서 이기게 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실제 그들은 죽음도 정복하는 왕이신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지켜주실 것을 믿기에 마땅히 경배를 드렸다.

 


▲구스타브 도레의 ‘십자가상 예수님과 두 강도’. ⓒcatholic-resources.org

 

3. 통치하시는 분

 

예수님은 부활하신 하나님만이 계신다고 여겼던 보좌로 등극하신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예수님이 원래 계셨던 자리이다.

 

하나님의 보좌가 공간적으로 천사들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은 창조된 모든 피조물과 실재에 대한 하나님의 고유한 초월성을 의미한다. 천상의 영광스러운 존재인 천사들이 신들로도 경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실상은 유일하신 경배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께 예속되는 피조물일 뿐이다.

 

그 높은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르셨고 좌정하셨다. 예수님이 보좌에 좌정하셨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통치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하늘 보좌는 이사야에서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셨다고 나오고, 다니엘과 예레미야에도 어전회의가 이루어지는 최상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자리이다.

 

누구나 올 수 없고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주권을 행사하는 자리이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자리에 오르시고 앉으사 통치권을 행사하신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보좌에 등극하시는 예수님을 경배하며 그분이 지금 이 땅과 만물을 다스린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 분의 통치는 땅 끝까지 이르고 영원까지 미치게 될 것이다.

 

스가랴서는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셔서 홀로 하나님을 드러날 것을 말하고, 계시록은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을 알린다. 지극히 높으신 예수님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신 것은 창조주요 통치자로서 마땅히 경배받으셔야 할 분이라는 것이다.

 

4. 버려진 자들과 연대하시는 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소리치며 죽으셨다. 이 버려짐은 초대공동체 성도들에게 아주 은혜와 감동이 되는 사건이었다.

 

이 예수님의 버려짐은 하나님의 부재 가운데 심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이들과 근본적으로 하나가 되는 예수님의 신적 정체성이 계시되는 현장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심한 고난과 핍박 속에 잘못된 유대 종교의 박해 속에서 버려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버려진 것이 아니었다. 주님이 먼저 버려짐으로 그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데리고 가는 버려짐이었다.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는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는 버려짐이었다. 이 예수님의 고통은 자신의 아픔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버려진다는 것은 예수님이 느끼는 하나님의 부재였고 예수님의 심한 두려움이었으며, 인간에게도 이 버려짐과 거절감은 가장 큰 불안과 공포이다.

 

그러나 바로 예수님의 버려짐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시는 계시이다. 그 가장 큰 절망이 있는 곳에서 죄를 속량하시고 새롭게 하신다. 결코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은혜롭게 살도록 붙들어 주신다.

 

버려지는 것은 얻는 것이고 채워지는 것이며 풍성해지는 것이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이 주님의 버려짐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연합되었다는 것에 감사드렸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맡기신 자를 위해 친히 버려지는 예배받기 합당한 분이셨다.

 

결론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동일한가? 예수는 하나님이신가? 그렇다. 불온한 말이 아니라 초대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며 합당하게 예배하고 경배하며 송영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보좌에 등극하셨고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이며 유일한 대제사장이시고 홀로 하나님이셨으며, 버려지기까지 사랑하신 분이셨다. 그 분은 또한 마지막 화목제물이 되시고 천사보다 높으시며 가장 좋은 중보자가 되신다.

 

우리는 그 놀라운 예수님을 힘입어 초대교회 성도처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고, 그 분을 힘입어 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믿음이 약해지고 세상에 이끌려 침륜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비틀거릴 수 없다. 십자가의 군사와 언약의 용사가 되어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적이며 역동적인가! 그 분은 마땅히 경배받으셔야 하는 분이시다.

 

방영민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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